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전체주의의 기원“이란 책에 ”철저한 무사유“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의 행동이 주변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자신의 일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것인가는 생각하지 않고 성실하게 근면하게 묵묵히 자신의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자로 유명한 '아이히만'의 재판과정(1961년)을 지켜보면서, 그가 아주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성실하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희대의 살인마에 걸 맞는 악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접한 유대인들은 대단히 불쾌해 하고 심지어 한나 아렌트를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철저한 무사유에 빠져 아주 성실하게 아주 근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행했던 유대인과 관련한 일들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유대인들이 어떠한 고통에 빠질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승진을 위해서 근면하게 노력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전문화되고 분업화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게다가 너무 바쁜 나머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어지고 있는 이때에, 소통과 공감능력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고 철저한 무사유에 빠져버린다면... 그것은 대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복지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규모와 경제적 효율만을 생각하고, 시장화와 경쟁이 난무하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타인 및 타 조직과 소통하지 않고, 개인적 사유에 기초한 조직적 사유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아이히만’처럼 “철저한 무사유”의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더나가 사회복지 현장의 구습과 관행이 결합한다면 우리가 흔히 언론에서 보는 사회복지 현장의 인권유린과 부정비리는 항상 실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의 비리와 인권유린을 접한 시민들이 “그래도 거기에는 사회복지사들이 있잖아!”, “그래도 평범한 아니 사람을 위한다는 사회복지사 직원들이 있었는데 그런 일들이 가능할까”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직원과 사회복지사들이 철저한 무사유에 빠지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복지현장과 사회복지사들은 “철저한 무사유”를 경계하여야 합니다.
끊임없이 타자와 타조직과 소통하고, 개인과 집단의 사유가 필요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진정한 사회복지란 무엇인가?
내가 정말 클라이언트를 위한 삶과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조직은 본연의 목적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가?
근본적인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나는, 조직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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